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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제6회 의춘군산악회 등산대회 후기
작성자  옥건수 작성일  2017-04-24 09:13:17

 

6회 의춘군산악회 산행대회

 

일시: 2017.4.22. 오전1030~ 13

장소: 죽천공 산소

참여인원; 전체참여 100여명, 등산참여70여명

등산코스: 주천공산소~대금산 중간지점

차기장소: 창원

참여현황: 전국각지 종회에서 참여

행사주관: 거제옥청회, 거옥회

 

처음 참여하는 의춘군산악회(옥씨산악회)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9대 회장를 지낸 옥정표, 원로자문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옥삼종, 대종회회장 옥형길, 각지역종회장 그리고 많은 회원들이 모였다. 간단한 의식을 하고 산행지로 나셨다. 얼마 가지 않아 아버지님 묘소가 있는 곳을 지나간다. 사람들이 묘소 조경을 보고 칭찬을 한다. 얼마 안가니 봉산재다. 몇 해 전부터 옥포고등학교에서 대금산가는 등산로가 생겨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다. 우리들이 자랄 때에는 소먹이는 소로길로 사람이 겨우 사람이 다닐 정도의 길이 였으나 지금은 얼마나 많은 등산객이 다니기에 길이 반질반질하다. 30분 정도 등산하여 대금산이 보이는 산마루에서 휴식을 취하고 가져온 간식을 나누어 먹었다. 좀 모자라는 듯 했으나 산에서 먹는 숭어회는 별미다.

 

잠간 휴식을 취하고 하산을 했다. 중간지점에 오니 산을 개관하여 밭을 일구어온 곳이다. 약초로 쓰일 청미래덩굴 뿌리와 위장에 좋다는 느릅나무껍질을 말리고 있다. 농장주인과 몇마디 대화를 하다 하산했다. 죽천공 묘소에 도착하니 벌써 식사가 시작되고 식순에 따라 식이 시작되고 있엇다. 특히 준비한 음식은 거제종회 부인들로 구성된 巨玉會에서 준비를 했는데 다양한 반찬과 회를 마련하여 다들 맛있게 먹었다. 이 회를 출범시킨 옥형길 종회장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특히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열열히 참여하시는 원로고문회의 옥삼종회장님께 한번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쉽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에도 여기까지 옥씨 종친회가 발전되도록 손발이 다달도록 물심양면으로 노력을 기우이신 옥형길 대종회 회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쉽다.

 

마지막으로 오늘 행사를 주관한 거제옥청회 회장과 회원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아래 내용은 한번 읽어보시길~~~.

 

옥신변...1566~1656 의령옥씨 입거제 시조

 

옥신변은 1566년생으로 임진왜란(1592)이 발발하자 거제도 의병대장 제인국의 사위로 전투에 참여하다 1594년 왜군의 포로로 잡혀 일본에 갔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1600년 작은 선박에 몸을 싣고 일본 할머니와 함께 옥포에 도착하여 죽토에 터를 잡고 살았다. 죽천사 묘비문에 보면 생략~ 거제의 玉浦鎭이라 죽토와의 거리가 10인데 죽토는 侍郞公藏修한 곳으로 이어 그곳에서 취거하니 府伯(府使))이 공의 風儀를 듣고 本鎭을 지키게 함에 남은 적을 거의 다 剿捕(초포) 하셨다. 또 이어 校長이 됨에 孝悌?하고써 예의를 펴시니 멀리서 비로소 학문하는곳이 알게 되었다. 府伯이 조정에 전달함에 樂 正增殖하고 효종 임금 때 또 호조참의 에 贈職되셨다. 향년 91세로 죽토에서 돌아가심에 송정 장좌동에 장사지냈는데 숙종임금 乙未(1715)에 성균관과 四學儒學者와 도내의 儒生들이 힘을 합쳐 여러차례 상소를 올려 죽천사에 祭享케 하였다. 숙부인 諸氏本籍漆原으로 부장인국의 따님이시며 중장 公 諱 洙三從姪女로 심이 婦德이 있으셨는데 묘는 남편과 合葬하였다.

配淑夫人김해김씨는 呂秀의 따님이라 묘는 의 묘의 右側附葬되어 있다. 31낳으시니 장남은 宣敎郞으로 이조참판에 贈職振成이며 차남과 3남은 大成,又成이며 따님은 潘斗星에게 出家하였다.

포로는 있을 시 풍신수길이 일본에 귀하 할 것을 회유했으나

寧歸故國死 不在拍鄕生...죽어 고국에 돌아갈지언정, 짐승 같은 이 땅에 살지 않겠다.

許船路遂迫...작은 선박 한척을 주며 돌아가도 좋다.

 

일본 할머니와 거제옥씨

 

오래전 일본 할머니의 후손들이 거제도 입거제 옥씨가 일본 할머니 후손이 승계함이 옳다고 주장하다 묵살 당하자 그 이후 흔적이 없어 사라지고 지금은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의령옥씨가 아닌 거제옥씨라고 주장함.

 

거제의병장 제인국의 사위...옥신변

 

기록에 보면 15925712시경 조선수군은 옥포에 정박하고 있는 왜군을 공략하여 30여척 배 중 26척을 침몰시키고 수많은 왜군들을 참살시켰다. 그러나 그 중 일부는 옥포뒷산을 넘어 송정고개를 넘어오자 거제의 원로 제인국(, 훈련원 부장)은 연초,하청등지에서 장정 200여명을 모아 송정고개에서 1차 기습하였으나 일본군의 조총에 후퇴하고 말았다. 다음날 거제현령 김준민의 관군3백명과 합세하여 연초 열려천에서 다공까지 몰아부쳐 수십명의 왜군을 몰살시켰다. (몰바대전투)

 

<<< 옥포해전과 거제의병 전투일지 >>>

1592.5.6. 오전 12시 옥포 해전 ...일부 왜군은 옥포 뒷산으로 도망감

1592.5.7. 거제 의병장 제인국이 의병 200여명을 모아 송정에서 전투

1592.5.8. 의병200명과 관군300여명이 합세하여 연초열녀천과 다공밀바대 전투에서 승리함.

1592.5.9. , 의병장 제인국과 의병들은 거제읍성(고현성)수호결의하고 성주 윤승보 임명

1592.5.10.~12 거제현령 김준민이 군사를 이끌고 진주 전투에 참여하자 왜군은 일제히 공격하여 격열한 전투를 했다. 그러나 왜군의 조총을 막을 수 없어 성주 윤승보가 적어 총탄에 맞자 거제읍성은 함략되고 말았다.

한편 옥신변과 옥계성은 전투에 참여했는데, 옥신변은 장인 제인국과 함께 이순신 휘하에 들어갔으며, 옥계성은 곽재우 의병장 휘하에 들어가 혁혁한 공을 세웠다.

 

먼저 벼슬 앞에 행() () () () () 등이 붙는 경우

 

()..벼슬의 등급은 높은데 낮은 관직을 맡았을 때( 대사헌 김부봉)

()..품계가 낮은 사람이 자신의 품계보다 높은 관직을 맡았을 때 (수 대사헌 김두봉)

()...죽은 뒤에 대사헌에 추증됐다면 증()대사헌이라 일컫는다( 증호조참의)

검교(檢校)/ ()... 명예직으로 어떤 벼슬을 내릴 때 그 벼슬 이름 앞에 붙였다.

()... 수통정대부(壽通政大夫)처럼 연세가 많은 분들께 내린 벼슬이다.

 

비석에 새겨진 通政大夫, 通訓大夫 嘉善大夫 戶曹參議 吏曹參議 등의 의미는?

贈通政大夫...돌아가신 후 국가나 종친에 품계를 올려서 받은 품계임.

위의 품계는 정3품의 벼슬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입거제 할아버지 옥신변인 이유

거제 옥씨의 입거제 할아버지는 12세 옥신변이다. 12세 중 아주문중 옥춘개(2중손 후예), 옥계성 할아버지(3증손 후예) 그러므로 옥신변 할아버지가 派祖 浩할아버지의 제1증손 후예이므로 입거제 할아버지로 통칭되는 것이다.

옥신변과 관련 인물

관련 인물

출생

임란시

적 요

諸仁國

1555~

37

거제도 최초 의병장, 옥신변 장인. 위패는 하청 중리 경충사에 억,,홍록이 모셔져 있다.

玉信卞

1566~1656

26

의령옥씨, 거제도 입거제 할아버지, 죽천사에 모셔져 있다.

31(진성,대성,우성,)

첫째부인(漆原諸氏)

1575~1636

17

淑夫人, 제인국의 딸

둘째부인(金海金氏)

1594~1641

-2

配淑夫人, 金呂秀의 딸

셋째부인(日本人)

?

?

일본할머니로...자식들이 거제옥씨라 주장

자녀

 

 

진성,대성,우성,(31)

玉桂成

1571~1658

21

선무원종 正二品 2등공신. 삼거림에 묘소가 있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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